발달장애인 재능 살리는 디스에이블드 김현일 대표
2018-01-23 입력 | 기사승인 : 2018-01-23
데스크 bokji@ibokji.com

서울 성수동의 벤처 공간 ‘헤이그라운드’에서 만난 김현일(27) 디스에이블드(This Abled) 대표. 그는 어린 시절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을 앓는 이웃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이 질병을 앓는 중증 정신장애인은 기억, 암산, 예술 등 특정 분야에서 천재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종종 발달장애를 겪는 사람들의 일부는 미술이나 음악 등 특정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최근 국내 LG의 울트라와이드 CF에 등장한 발달장애 예술가 스티븐 윌셔(Stephen Wiltshire). 그는 한 번 본 뉴욕의 풍경을 화폭에 그대로 재현해 유명해진 ‘서번트 증후군’ 화가다. 반면 국내의 발달장애 예술가들은 윌셔와 같은 재능을 펼치기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다. 장애라는 사회의 편견과 생계 등의 이유로 능력을 꽃피울 만큼 지속적인 활동이 어려운 탓이다.



디스에이블드 김현일 대표  ⓒC영상미디어 

 
디스에이블드의 시작은 김현일 씨의 어릴 적 경험에서 출발한다. 어린 시절 김 씨의 이웃집에 살던 형은 정신지체장애인이었지만 피아노를 너무나 잘 쳤다. 천재적인 피아노 실력 때문에 방송에도 여러 차례 출연했지만, 그의 부모는 “그래도 내가 죽으면 이 아이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말을 늘 혼잣말처럼 했다.


“이웃집 형을 10여 년 동안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타고난 음악적 재능이 있지만 정신장애가 걸림돌이 되더군요. 생계마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 형 같은 발달장애 예술가들의 재능을 살릴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장애인 부모 깊은 한숨이 창업 계기 됐죠”


우선 장애인 예술가 활동을 찾아 나섰다. 그러던 중에 서울 모처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예술가의 전시회에 참석하게 됐다. 그는 발달장애인 작가들의 작품에서 일반적인 미술 작품과 다른 색감(色感)이 특이한 매력을 발견했다. 일반인의 시각과 다른 낯선 구도와 독창적인 색감에서 강한 느낌을 받았다. 또 다른 전시회에 가서도 작품만 보고 작가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가마다 개성과 정체성이 강하다는 것도 주목했다.
 

발달장애인들에게서 영감을 얻은 김 씨는 대학생 신분으로 2016년 9월 스타트업 디스에이블드를 창업해 국내 발달장애 예술가들의 지속 가능한 예술 활동을 돕기로 했다. 창업을 복수 전공으로 했고, 미술 관련 수업에다 문화예술 큐레이터 과정까지 밟았다.


회사 이름을 장애(Disabled)라는 단어에서 ‘D’를 ‘Th’로 바꾸니 ‘This abled(이것은 가능하다)’라는 긍정적인 뜻으로 바뀌었다.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떠올리기보다 제품을 통해 긍정적 이미지를 주고 싶다는 바람이 담긴 것 같아 얼른 회사 이름으로 정했다고 한다.
 

“발달장애인이 활동하는 여러 분야 중 미술 분야를 선택했습니다. 당장 제품화가 쉽고 구매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어서예요. 회사 모토도 ‘너와 항상 함께하겠다(ALWAYS BE WITH YOU)’입니다. 실생활에서 제품을 사용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개선하자는 취지죠.”


발달장애 작가들의 아이디어와 작품을 휴대폰 케이스, 보조배터리 케이스, 여권 케이스, 노트북 파우치, 아트 테이블, 골프공 등 판매 가능한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수익금의 30%를 작가에게 돌려준다. 또 남은 수익금으로 다시 전시회를 개최한다. 장애 작가들에게 금전적인 수입만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활동을 이어갈 무대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 1 서울 성수동의 벤처공간 ‘헤이그라운드’에서

작년 연말 열린 발달장애인 작가들의 작품 전시회.

이다래 작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2 파스텔을 이용해 작품을 그리고 있는 이다래 작가.

3 지난해 12월 20일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가진 전시회에 모인 작가와 디스에이블드 관계자들.

왼쪽부터 강선아 작가의 어머니,

이의종 디스에이블드 이사, 김현일 대표, 강선아 작가,

이다래 작가, 이 작가의 어머니. ⓒ디스에이블드 


▶ 4 지난해 12월 20일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

전시회에서 작품 앞에 선 강선아 작가와 모친

ⓒ디스에이블드 


디스에이블드는 2016년 8월 세종대 창업지원 프로그램인 ‘SK 청년 비상 프로그램’의 창업동아리로 선정됐으며, 2017년 2월에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에도 선정됐다. 또한 다양한 공익 콘텐츠를 소개하는 ‘네이버 함께N’에 두세 차례 메인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김현일 대표는 스타트업 디스에이블드가 첫 창업은 아니다. 지난 2015년 주위에 가깝고 안전하며 깨끗한 화장실을 찾아주는 위치기반 서비스 ‘오픈렛’으로 창업한 적이 있다. 그는 “저는 오픈렛이 굉장히 좋은 취지의 사업이라 생각했고, 또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들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는데 사업이 실패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며 “그때 얻은 교훈은 아무리 좋은 취지의 사업도 수익이 없으면 운영되지 않는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디스에이블드의 경우 제품 개발뿐 아니라 유통망을 갖추는 데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창업의 어려움도 털어놨다. “처음 창업을 했을 때 주말도 없이 몇 달을 쉼 없이 일했어요. 창업에 이르기까지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어요. 창업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이 그 문제를 풀어가는 데 골머리를 앓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의 경우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에 선정되는 등 정부 지원 사업에 도전해 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자금 마련의 물꼬를 트게 됐죠.”


디스에이블드 제품의 차별성은 ‘실용성’에 있다. 김 대표는 “처음 사업을 시작할 당시 보통 위안부나 유기동물 등의 후원 사업 리워드가 거의 고무 팔찌여서 실생활에서 사용을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다”면서 “좋은 마음으로 만든 제품을 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지 고민을 하게 됐다”고 했다. 김 대표는 “우리가 현재 핸드폰, 노트북, 여권 등 케이스로 제품을 구성하고 있는 이유가 그것”이라며 “좋은 마음의 기부행위를 자랑할 수 있고 생활 영역에서 이용 가능한 제품”이라고 말했다.


창업한 지 1년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국내 대기업과 해외 사업가, 대사관 등 여러 곳에서 발달장애인들이 아크릴로 그린 독특한 그림 세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납품하기도 했다. 기업·소비자 간 거래(B2C)와 기업 간 거래(B2B)에서 고른 판매 실적을 올리고 있다.


단지 ‘착한 기업’만을 표방하는 게 아니다. 제품 자체가 경쟁력을 갖췄다. 디스에이블드의 구매 고객은 주로 20~30대 여성. 디자인에 끌려 구입했다가 좋은 취지까지 알게 된 고객이 많다.


“우리 제품은 일상생활에서 쓸 수 있는 실용적 물건이 많습니다. 디자인도 예뻐요. 그러다 보니 여성 고객이 많은 편이죠. 어떤 계기로든, 어떤 방식이든 사람들이 발달장애 예술가들에게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가장 인기 높은 제품은 휴대폰 케이스와 보조 배터리다. 휴대폰 케이스 안쪽에는 특별한 입장권이 있다. 발달장애 예술가들의 전시회를 무료로 볼 수 있는 입장권이 부착돼 있다. 제품을 통해 손쉽게 발달장애 예술가들의 작품을 알리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휴대폰 케이스 안쪽에 작가 설명과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적어놓았어요. 좀 더 홍보가 되지 않을까 싶어 이런 방법을 썼어요. 폰 케이스는 항상 들고 다니니 관심 갖고 보다가 언제든 전시회에 와달라는 의미죠.”


디스에이블드가 알려지면서 먼저 연락을 해와 작품을 선보이는 발달장애 예술가의 부모도 늘고 있다. 현재 디스에이블드의 전속 작가는 강선아, 이다래, 박태현, 금채민 씨 등 20대 초중반 작가들 4명이다. 서울시 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와 MOU(양해각서)를 체결했고, 비영리법인인 아틀리에 플레이 투게더에서 작가들의 미술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함께 작업하는 작가만 총 13명이라고 한다. 사업 규모에 따라 인력도 점차 늘려나갈 계획이다.


김 대표의 목표는 성경 욥기 8장 7절(‘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의 말씀처럼 원대했다. 그는 현재 미술에 국한돼 있는 분야를 음악 등 여러 분야로 넓혀나갈 계획이다. “발달장애 예술가들을 위한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키우는 게” 김 대표의 꿈이다.


디스에이블드는 2017년 10월 사회적기업의 전 단계인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격상됐다. 김 대표는 “지난해 9월부터 연말까지 제품과 디자인 퀄리티를 높이고 신제품을 개발하고, 누리집을 개선하는 기간으로 삼았다”며 “다가오는 평창패럴림픽 때 홍보 부스를 마련해서 전 세계에 디스에이블드의 사업 취지를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김 대표는 “디스에이블드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생각보다 장애인과 사회 사이 상생의 가치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발달장애인 예술가에게 실질적인 수익을 안겨 지속적인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궁극적으로는 ‘장애인 예술가’라는 타이틀이 아닌, 한 명의 예술가로서 인정받게 해주는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현일 대표는 제품 판매 수익금으로 ‘디스에이블 펀드’도 만들 생각이다. 이 펀드는 부모 사후 중장년이 된 발달장애 예술가들이 연금 형식으로 받을 수 있는 금융 상품이다. 일일이 챙겨줄 가족이 없더라도 발달장애 예술가들의 독립이 가능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는 “아직 사업 초기라 미약한 모습이지만, 늘 코치해주시는 학교 관계자 분들과 언제나 ‘대표님, 힘내세요’ 하며 응원해주시는 발달장애 작가님들, 그리고 작가님 부모님들께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했다.

 
오동룡│위클리 공감 기자


<이 글은 ‘위클리 공감’에 게재된 내용으로 공공누리에 의거 공유함>
 



데스크 bokji@ibokji.com

프린트 메일보내기

기사에 대한 댓글

  이름 비밀번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