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윤리적 소비
천규석, 실천문학사, 2010
2014-03-03 입력 | 기사승인 : 2014-03-03

 요즘 한창 유행을 타고 있는 공정무역. 특히 공정 커피와 공정 초콜릿은 착한 커피와 착한 초콜릿이란 이름으로 불리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천규석은 <윤리적 소비>에서 이런 공정 무역에 일침을 가합니다. 책 제목에서 보듯, 그 일이 ‘착한가’ 보다 ‘윤리적인가’가 더 중요한 기준입니다.

  

 지금 세계시장체제에 예속된 농업의 국제 분업을 기정사실화하고 거기로부터 차선이라도 구하는 현실주의자들의 자기 위안 행위일 뿐이다. 그가 보기에는 세상에 자급·자치적 소비보다 더 높은 윤리적 소비는 없었던 것이다.

-104쪽
 
 설탕, 커피 등 열대성 기호식품의 플랜테이션 단작 농업은 이미 그 자체로 환경을 파괴합니다. 또한 가난한 나라를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 세계자본주의경제체제에 예속됩니다. 이는 그런 상업적 농업일 뿐이라고 합니다. 이 구조를 더욱 견고하게 할 수 있는 이런 상품의 수입 및 소비행위가 어떻게 그 나라의 민중을 돕는 ‘착한’일이 될 수 있느냐고 합니다. 이런 상품을 홍보하고 구매를 확대하는 일이 정말 그들을 돕는 일일까요?

 
 공정무역주의자들이 공정의 이름으로 얹어주는 프리미엄도 그것을 생산한 현지 주민들의 자급적 삶에 도움을 주기보다 그들에게 오히려 자본의 세계시장으로의 편입을 더 조장해주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정무역 생산자들은 커피 원두를 보다 비싸게 판 그 돈으로 그 공정무역품을 사들이는 나라의 중산층(?)에 속하는 나도 못 마시는 수입 와인과 샴페인과 코카콜라를 마신다고 한다. 또 그들은 다국적기업의 청바지와 카메라 등을 사서 자신에게 돌아온 공정무역의 프리미엄을 자본의 세계시장에 고스란히 되돌려주고 있다. 94쪽
 
 공정무역을 통해 커피나 설탕 등을 제값 주고 구매해 생산지의 가난한 농부에게 도움을 주자는 뜻은 귀합니다. 그러나 천규석의 날 선 비판과 함께 저 역시 사회복지사로 조심스러운 점이 또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마을에 세 농부가 있습니다. 두 농부는 커피를 재배하고 한 농부는 쌀을 재배합니다. 함께 커피 농사를 짓던 두 농부 중 한 농부가 공정무역의 혜택을 얻기 시작합니다. 같은 커피를 재배하지만 두 농부의 수입이 차이가 나기 시작합니다. 이는 대체로 갈등의 원인입니다. 공동체 균열의 시작입니다. 또한 이 모습을 지켜보든 쌀농사를 짓든 농부도 그 땅을 갈아엎고 커피를 심기 시작합니다. 이제 이 마을에는 쌀을 재배하는 농부가 없습니다. 먹을거리를 자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커피를 팔아 쌀을 사 먹어야 합니다. 외국에서 판매하는 쌀값이 오르면 더 열심히 커피농사에 매달려야 합니다. 반드시 먹어야 하는 쌀, 그 쌀을 판매하는 이에게 종속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마을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복지사로서 공정무역에 관한 천규석의 우려에 공감합니다.
 
 설마 커피, 설탕의 플랜테이션의 단작농업의 과거와 현재의 근본적 문제가 전혀 해소된 것이 없는데도 생산자에게 이익을 주고 소비자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주는데 공정무역이 앞서서 자본과 대기업까지 끌어들었다고 좋아할 일인가?…생산농민들이 그런 무역으로 값을 더 받는 만큼 그 무역에의 의존율은 높아갈 것이고, 농업의 국제분업적 단작재배로 자신의 숲과 땅의 생명을 그만큼 더 죽여 갈 것이다. 지역적 자급자족을 통한 자립과 자치는 더 멀어질 것이고 지속 불가능한 시장 예속으로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지구의 파국과 종말도 앞당겨질 것이다. 95쪽
 어떤 주장이 진실이 되려면 일관성과 보편성 즉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다시 상기해보았다.…진리는 일관성이다. 93쪽

 
 그 전까지는 그 나라 사람들이 먹을 작물을 기르던 농지는 커피, 홍차, 면화나 콩 같은 수출할 수 있는 작물을 심는 밭으로 변해버린다. 원래부터 부족했던 개발도상국의 식량은 ‘빌려 주기 원조’ 때문에 더욱 줄어들어 버리는 것이다. 80쪽
 
 천규석은 진정 제3세계 가난한 농부를 돕고 싶다면 공정무역보다 자급자치 공동체를 이루게 거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진정한 자치는 자급의 구조 위에서 피어납니다. 자급해야 자치할 수 있고, 자치해야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기 때문이라 합니다.
 
 민중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공정무역도 호혜도, 시혜도, 연민도, 국가복지도 아니다. 그것은 민중이 지역 단위에서 스스로 먹고살고 스스로 일어서고, 스스로 다스리는 자급·자치력을 스스로 기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국가와 시장자본주의적 모순의 악순환으로부터 영원히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는 진실을 어떻게 민중 스스로 깨닫게 해주느냐 하는 것뿐이다. 92쪽
 
 분명히 처음 공정무역을 고민하고 계획하여 실천으로 옮긴 이의 생각이 깊었을 것입니다. 가난한 나라 농부를 위한 애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규석의 이야기를 읽으니 좋은 일에 앞서 그 일이 윤리적인가, 즉 마땅한 일인가를 우선 숙고해야 함을 알았습니다. 이쯤 되니 이제 어떤 일을 시작하기가 두렵기까지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일에 앞서 더욱더 사회복지의 이상과 철학을 다듬고 뚜렷이 세워야 합니다.
 
 상품작물은 그 나라의 농업뿐 아니라 환경까지 파괴하는 것이다. 상품작물로 인해 현지 농민의 생활이 윤택해진다는 주장이 있지만, 현실에서 상품작물은 항상 공급과잉이어서 국제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대규모 플랜테이션만이 가격 경쟁에서 살아남고, 작고 힘없는 농민은 무너지고 있다. 그 결과 농민들은 땅을 팔고 도시로 들어가거나, 가진 땅 없이 대규모 플랜테이션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계에서 빈곤을 없애는 30가지 방법>, 94쪽
 그들의 빈곤을 해결하는 방법은 빈민촌 주민들이 지역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려가도록 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빈곤을 없애는 30가지 방법>, 155쪽



 “우리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인류를 변화시킬 생각은 하고 있지만 정작 아무도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자기 자신의 변화란 영적 혁명이며 자기 자신마저 버리는 내적 혁명이다.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혁명이다. 172쪽
 
 천규석의 윗글을 읽었을 때에는 어렵기만 했습니다. 옳은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했습니다. 무슨 결단을 해야 할 듯 비장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때 2010년 강진 다산수련원에서 열린 사회복지정보원 사회사업 캠프에서 김조년 교수님의 기조강연이 떠올랐습니다.
 
 “독서는 혁명이다.”
말씀인즉, 독서를 통해 깨닫고 체화하는 일, 그 자체가 혁명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포로상태, 식민체제에 살고 있습니다. 무엇에 의한 식민일까요? 나를 감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나를 독립적으로,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게 하고 가족, 종교, 직장, 상품, 민족, 국가 이데올로기 등이 나를 억압합니다. 대체로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이런 틀 속에 갇혀 길들어 왔습니다. 따라서 독서는 이런 틀을 인식하고 벗어나기 위한 시작이라고 합니다. 즉 책 읽기로 혁명하자는 것입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억압을 깨닫고 탈출을 시도하는 혁명!


"세상의 변화, 그 시작은 나부터입니다."

김조년 교수님의 말씀처럼 나의 변화는 바로 독서에서 시작합니다. 관심을 두는 일, 관심이 책으로 깊어지는 일이 중요합니다. 행동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농산물 직거래 같은 노·농 연대를 통해 시장을 넘어 새로 만들어가려는 세상은 무슨 ‘기구’ 같은 통제기관을 가지고 ‘합리적인 계획’을 강제하는 사회주의국가가 아니다. 시장과 공존하면서 세금을 통해 부를 재분배하려는 이른바 ‘복지국가’도 아니다. 그것은 시장과 국가를 동시에 넘어서서, 민중 스스로의 자급과 자율로 서는 자치적인 지역공동체 세상이다. 211쪽

 나도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고 사는 한 상부상조하는 복지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현행의 보험이나 연금 제도 등과 같이 자본주의국가에 의해 복지의 대상을 정상인 사회로부터 무슨 전염병 환자처럼 분리하여 수용하는 국가제도로서의 복지가 싫다는 것이다. 그리고 복지주의를 가장한 국가가 주도해서 원하지  않는 사람까지 세금이나 보험금을 받아 강제 가입시키는 그 강제 제도복지가 참을 수 없이 싫을 뿐이다. 224쪽
 
 사회복지사가 이루려는 마을공동체는 사람들의, 특히 약자의 인간관계를 새롭게 구축해 가는 과정 전부를 의미합니다.
 
 공정무역 업계라 할지라도 왜곡이 생기거나 부정이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거래의 규모가 커질수록 ‘얼굴이 보이는 관계’는 빈말이 되기 쉽고, 서로의 진짜 요구가 보이지 않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빈곤을 없애는 30가지 방법>, 216쪽



함께 보면 좋을 다큐멘터리를 소개합니다.
EBS 다큐프라임 <히말라야 커피로드> 3부작.

네팔의 작은 산악마을, 그 마을에 커피농사가 어떻게 자리 잡는지 자세히 보여줍니다. 오랫동안 유지된 마을공동체가 어떻게 약해지는지 보았습니다. 젊은이들이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

‘히말라야 커피로드’는 공정무역의 중요성을 설명하려는

의도로 제작한 다큐멘터리입니다. 하지만 이 영상에서 커피가 무엇인지 모르고 마셔본 경험도 없는 이들이 커피농사를 선택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가난한 농부가 멀쩡한 농지를 갈아엎고 그 땅에 환금작물을 재배하게 하는 세계경제구조도 보입니다. 오히려 공정무역 커피를 포함하여 외국에서 수입해 먹고 마시는 일에 지나치게 과열된 우리의 소비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혼란스럽습니다.
 
가난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커피 농사를 택한 가장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커피에 희망을 건 히말라야 말레 마을 사람들이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돕기 위한 공정무역조차 비판하면 어떻게 일하자는 것인지, 스스로 물어봅니다. 단정하기 어렵고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생각이 나아가지 않습니다.
 
커피를 마실 때 될 수 있으면 공정무역 커피를 선택하지만, 그 때문에 가난한 농부를 도왔다는 만족도 경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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