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엄마의 엄마
2019-05-17 입력 | 기사승인 : 2019-05-17

내 부모 챙기는 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가슴 속에

응어리와 분노가 가득 쌓인 어르신들 돌보는 일은 오죽할까요.

 

제 이름은 김지영.

1955년 음력 8월 15일, 온 집안이 추석음식 준비로 바쁠 때 눈치 없이 태어났습니다. 첫째가 딸이라 아들을 기다리셨을 텐데 그야말로 물색없이 또 딸이 태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기질이 예민했던 언니와는 달리 다행히 순둥이여서, 눕혀놓으면 온종일 울지도 않았다니, 둔한 것인지 순한 것인지. 어쨌든 그 덕에 뒤통수는 절벽처럼 납작해지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막둥이로 웬만한 배우보다 잘생긴(엄마 눈의 콩깍지) 남동생이 태어나 엄마도 한시름 놓으셨겠지요.


저는 별 탈 없이 자라서 대학원까지 가고 유학도 갔지만, 박사는 못 하고 남편만 박사를 만들었습니다. 마음씨가 고운 천사표도 아니고 사회복지 전공자도 아닌데 팔자였는지, 시댁에서 1993년 사회복지법인을 만들게 되어 노인복지에 발을 담그게 되었고, 오늘까지 25년을 일 하고 있습니다. 74세가 될 때까지는 이 일을 계속 할 생각입니다. 그


뒤로는 딱 10년만 글을 쓰고 강의하러 다니는 삶을 꿈꾸고 있습니다. 누가 불러줄 때까지 쭉 밀고 나갈 생각입니다. 이번 「제 손이 따뜻한가요」는 그 첫걸음입니다. ‘인디언이 기우제를 지내면 꼭 비가 온다’ 는 말처럼 기우제 지내듯 될 때까지 글을 쓸 생각입니다.


7년 전, 심근경색으로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해 작은 시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심장으로부터 나와서 온몸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 중 제일 굵은 혈관이 들러붙어 막혀 있었고 이를 뚫어서 피가 원활히 흐르도록 하는 시술이었습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주 작은 스프링처럼 생긴 스탠트라는 것을 넓적다리 동맥을 절개해서 심장 부위까지 집어넣어 붙어 있던 지점의 혈관을 강제로 열려 있게 하는 시술이었지요. 이후 매일 아침 이를 유지하기 위한 네 개의 알약을 먹고 있습니다. 수술실로 들어가면서 생각했습니다. ‘아, 노인이 되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노인이 되는 것을 ‘축복’ 이라고 하는구나!’ 하는 깨달음이 날카롭게 머릿속을 파고들었습니다.


다행히 무사히 퇴원하게 되었고, 우리 기관 어르신들과 여든 중반의 친정엄마와 티격태격하는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었지요. 하지만 재가노인복지에만 온 힘을 쏟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 손이 따뜻한가요」를 기획하면서 그때를 다시 떠올리며 이 글을 씁니다.


저의 하루는 85세 친정엄마와의 통화로 시작됩니다. 혼자 사시는 엄마의 지난밤 꿈자리는 어땠는지, 식사는 잘 드셨는지, 무슨 드라마를 보셨는지, 병원을 잘 다녀오셨는지 등으로 출근길 30분을 가득 채웁니다. 10년 전쯤에 시작한 출근길 통화는 출장지에서도 계속하려고 노력했고,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작은 변화까지 금방 느낄 수 있게 되어 ‘늙어감’ 에 대해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부러 공휴일이나 주말에는 전화하지 않다가 월요일이 되면 “엄마, 오늘 무슨 요일이야? 며칠이지?” 하고 물어보기도 합니다. 엄마도 저와 이야기하려고 마치 숙제처럼 이야깃거리를 준비하십니다. 명색이 노인복지 하는 사람인데 내 어머니가 어떻게 지내는지 몰라서는 안 되겠지요. 또 제게 중요한 일이기도 하고, 전화를 통해서라도 세심히 관찰하면 제 일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요즘 저희 엄마와 저의 최대 골칫거리는 엄마의 ‘변비’ 입니다. 노인이 되면 하루에 한 번 변을 보지 않아도 정상이라고 누차 말씀을 드려도 제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으십니다. 되풀이해서 당신의 변비를 하소연하십니다. 돌이켜보니 1984년, 제가 엄마가 된 후, 처음 한두 해는 저도 아이의 배변 활동에 관심을 쏟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아기의 똥이 묽거나 설사가 하루 이틀 계속되면 호들갑을 떨곤 했으니까요. 그런데 엄마의 변비를 대하는 자세는 그때와 매우 다릅니다. ‘또 똥 이야기야?’ 하면서 99%는 짜증이고, 연민은 1%밖에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직원 40명에게 월급을 주어야 하는 날 아침, 보조금이 입금되지 않았다는 보고에 머리가 복잡한데, 엄마는 원활하지 못한 자신의 배변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하고. 10분을 반복합니다. 엄마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첫째, 입맛이 없어 통 먹지를 못했다. 둘째, 고혈압, 당뇨, 심장약, 변비약, 영양제를 한 주먹 챙겨 먹었다. 셋째, 당신은 하루에 한 번은 꼭 화장실 거사를 치러야 정상인 체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속으로 구시렁대기 시작합니다. ‘첫째,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뭔가가 배설된다면 의사에게 진찰을 받아야 하는 병이 있는 거고, 둘째, 변비약을 먹었어도 영양제나 고혈압 약만으로 변을 만들어낼 수는 없고, 셋째, 하루에 한 번 변이 안 나온다고 비정상은 아니지만 엄마는 생각을 바꿀 마음이 전혀 없으니 그저 영혼 없는 반응을 계속할 수밖에…….’ 이렇게 짜증을 내면서도 엄마와의 아침 통화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엄마에게 열심히 이야깃거리를 찾게 하고, 저와 통화하다 분해서 씩씩대면서라도 아침을 드시게 하려는 제 나름의 눈물겨운 효심입니다.


노인복지를 삼십 년 했다는 딸도 자신의 엄마 변비 하나도 명쾌히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제 부족함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엄마의 변비에 대한 제 처방은 힘드셔도 어쨌든 햇빛이 있으면 무조건 나가서 조금이라도 걸으시라는 것과 엄마 좋아하시는 빵과 콜라를 줄이시고 밥과 나물 신선한 채소를 억지로라도 드시라는 잔소리뿐입니다.


하지만 언니가 열심히 해다 드리는 반찬들도 반 이상이 냉장고에 있다가 썩어 버리는 독거 노인에게 필요한 것은 멀리 떨어져 잔소리만 하는 자칭 노인복지전문가 딸이 아닙니다. 매일 방문해서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식탁에 올려놓을 손, 드시는 것을 지켜보는 눈, 함께 의지해 산책할 수 있는 다리입니다. 엄마의 표현대로 라면 ‘내가 필요한건 딸이 아니라 엄마야’ 엄마 같은 돌보미 엄마가 필요해…….


내 부모 챙기는 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가슴 속에 응어리와 분노가 가득 쌓인 어르신들 돌보는 일은 오죽할까요. 우리 요양보호사가 방문하면 문을 열자마자 빗자루를 휘두르시는 할머니, 젊은 요양보호사를 보내라고 화를 내시는 할아버지. 이런 분들을 오늘도 만나러 갑니다.


「제 손이 따뜻한가요」를 함께 만든 이들은 모두 돌봄 현장의 어벤져스들입니다. 비록 글 솜씨가 서툴러서 우리의 열정과 진정성을 온전히 보여줄 순 없다 해도 우리는 또 시도할 작정입니다. 아마 다음 책에는 어르신들을 돌보면서 겪은 눈물 쏙 빼는 가슴 저린 이야기, 오줌을 지릴 정도로 배꼽 빠지는 이야기들도 나올 거라 기대합니다. 계속 지켜봐 주시고 격려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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