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옥] 당신은 내 마음의 주인
2019-05-17 입력 | 기사승인 : 2019-05-17

당신은 내 마음의 주인


밤을 새며 내 등을 쓰다듬어주던 네 손,

가슴으로 사랑한 고마움을 기억하겠다.


사람들은 늘 행복을 찾아 과거, 혹은 미래를 기웃거린다. 일상의 많은 시간을 어르신들과 보내다 보면 늘 똑같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때도 있지만, 마음과 생각이 통하는 순간, 작은 것 하나에도 웃음을 나눌 수 있어 오늘도 행복하다.


어렸을 때는 여느 꼬마들처럼 대통령 되는 것이 꿈이었다가, 초등학생 때 선생님의 칭찬을 계기로 사회복지사를 꿈꾸게 되었다. 그렇게 꿈을 이루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어르신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어느덧 나 역시 ‘어르신’이 되어가는 중이다.


깊이 마음을 나눴던 가까운 이의 죽음은 과거가 어떠했든 회한과 슬픔이 가득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잘한다고 했어도 후회와 슬픔, 죄책감이 없을 수가 없다. 비단 죽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요양원에서 지내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이별에는 면역이 되지 않아, 매번 그리움과 먹먹함에 가슴을 치게 된다. 그중에서도 가슴에 사무쳐 도무지 잊을 수 없는 이별이 있다. 평생을 성산포 삼달리 앞바다에서 해녀로 바다를 누비며, 소라, 전복, 미역을 따시던 정○○ 어르신과의 이별이다.


10년 전이었다. 세찬 비바람이 불고 날이 궂어 한낮인데도 하늘이 우중충하여 저녁나절 같은 날이었다. 어르신의 며느리가 급하게 요양원으로 전화를 했다. 1시간 이상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성산포 삼달리 앞바다였다. 금방이라도 성난 파도에 휩쓸려갈 듯이 바닷가 바로 앞에 자리한 다섯 평 남짓한 초가집이었다.


“안녕하세요!” 여러 번 불렀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문을 열고 여기저기 찾아봐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어르신을 찾아 동네 골목골목을 헤매다 보니 저 멀리 바닷가 바위 위에 어르신이 앉아계신 것이 보였다. 울퉁불퉁한 돌길을 따라 부랴부랴 어르신 곁으로 가까이 가보니 금방이라도 물속으로 떨어질 듯이 아슬아슬하게 앉아 계셨다.


“어떵와시니? 여기왕 앉으라.” 그때의 그 미소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마 여기서 소라를 따고 전복도 따고 미역도 따셨겠다고 생각하면서 어르신을 모시고 요양원으로 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해녀 일을 하면서 5남매를 키우셨고, 할아버지는 고기 잡으러 배 타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셨다고 한다.


요양원에 오셔서 함께 지낸 지 몇 십년. 어느 날에는 내가 딸이 되기도 하고, 며느리가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밤낮없이 봇짐 싸 들고 삼달리로 가겠다며 요양원 앞마당을 서성이셨다.


어떤 날에는 “불끄라~ 불끄라~” 하시며 불이 켜져 있으면 바로 꺼버리신다. 절약 정신이 투철하셔서 불을 켜두면 어르신께 혼쭐이 난다.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도 불을 켤 수가 없다. 다행히 밤에는 불 켜는 것을 ‘허락’ 하신다. 부지런히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불을 끄시는 게 하루의 첫 일과이다. 그렇게 정정하던 어르신은 정말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셨다. ‘이렇게 홀연히 가실 줄 알았으면 별것도 아닌 사탕 하나에 눈을 못 떼실 때, 그때 하나 더 드릴 것을…….’ 하며 사소한 일까지 후회와 괴로움이 밀려들었다. 그래서 오늘도 내려놓고 비우는 연습을 해본다.


오늘도 동광효도마을에 사는 천진한 어르신들과 손에 손을 맞잡고 요양원 앞마당을 산책한다. 내 손을 어루만지다가 머리를 쓸어안기도 하고, 촉촉이 젖은 눈망울로 나를 보며 내 귀에 나지막하게 ‘내 너를 잊지 않으마. 수고가 많다. 밤을 새우며 내 등을 쓰다듬어주던 네 손, 가슴으로 사랑한 고마움을 기억하겠다.’ 고 속삭이시던 어르신이 그립고 또 그립다. 어렵게 어르신을 떠나보내고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자 조금씩 써 두었던 습작을 이제야 꺼내어 본다.


지나가는 바람결에, 일렁이는 안개 속에, 그리고 놓여있는 사탕에서 자꾸만 비치는 어르신의 모습이 더는 빛바래지 않게 이 책에 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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