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남] 우리는 완전한 돌봄을 할 수 있을까?
2019-05-17 입력 | 기사승인 : 2019-05-17

우리는 완전한 돌봄을 할 수 있을까?


근본적인 해결책 없는 불완전한 미봉책들


어느 가을이었다. 가정봉사원파견센터에서 아침 업무를 보고 있을 때 전화가 울렸다. 휴대전화를 받자마자 울음 섞인 다급한 목소리였다. 앞뒤를 알 수 없는 말들이 들려왔다. 취약 노인들의 가정을 방문하는 우리 선생님 목소리 같아서 일단 심호흡을 시키며 진정하도록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회성 장애가 있는 아들과 사는 김 할머니 댁을 방문했는데, 헛간에서 아들이 할머니 옷을 벗겨 놓고 성폭행을 하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목격하고는 혼비백산 하여 도랑에 흐르는 물을 손으로 퍼먹고서야 겨우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일단 격리해야 겠다 싶어서 직원과 함께 출동했다. 다른 직원이 할머니의 자녀들에게 연락하여 그 아들을 병원에 입원시키도록 하고, 필요한 행정조치들을 취하는 사이, 할머니를 차에 태워 우리 시설의 긴급쉼터로 모셔왔다. 김 할머니께 이것저것 묻자 경증치매가 있는데도, 아들의 허물을 감추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한 두 번 당한 일이 아닐 텐데, 여전히 자식을 감싸려는 모습에 가슴이 아려왔다.


임시 거처인 요양원에서 식사도 잘하시고, 깨끗한 옷을 입고 있으시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불편하신 듯하다. 아들을 걱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동안 이런 아들을 남편처럼 의지하고 살았던 것일까? 할머니를 보면서 알 수 없는 불편함이 엄습해왔다.


이 땅의 많은 부모가 자녀들로부터 폭언, 폭행 등 학대를 당하면서도 학대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식이 처벌받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이런 분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암담함이 몰려왔다. 노인복지, 재가노인복지 현장에서 이런 일들을 마주할 때마다 고민이 깊어진다. 마음이 더 무거운 까닭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도 결국 할머니 본인이 원하여 집으로 되돌아갔다. 같이 살던 아들을 잠시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멀리 있는 큰아들이 다녀가는 것으로 미봉책을 세웠다. 하지만 정신병원에서 퇴소한 아들은 다시 할머니와 함께 사는 상황이 되었다.


우리 사회에 이런 학대와 범죄는 알게 모르게 계속되고 있다. 멀리 있는 가족에게 신경 써 줄 것을 신신당부해 보았지만 누가 그 가정을 24시간 지켜보며 케어를 할수 있겠는가? 불편한 마음이 내도록 가시지 않는다. 그나마 최근 커뮤니티케어 정책준비가 한창이라는데, 그 정책에 희망을 걸어봐도 좋을까?


여전히 마음 한쪽은 불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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