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옥] 노인복지는 내 운명!
2019-05-17 입력 | 기사승인 : 2019-05-17

노인복지는 내 운명!


내 목표는 오직 하나,

모든 사람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제 와 돌아보면 내가 살아갈 길은 태어날 때부터 운명처럼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부모님, 내가 나고 자란 환경, 형제들이 내게 준 영향, 이삼십대에 처하게 된 상황, 만난 인연 등 지금 이 일을 하도록 예비하신 신의 뜻이 있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20대에 일본에서 일하며 익힌 일본어와 일본인 친구들, 전자현미경을 다루는 기술 등을 재산 삼아 대전 대덕연구단지 표준연구원에서 일하며 행복한 삶을 일궈나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몸져누우시기 전까지.


어머니는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1·4후퇴 때 평양에서 진해로 피난을 와서 평생을 사신 분이었다. 결혼 후 서른넷에 혼자되어 5남매를 기르셨고, 예순에 중풍과 치매로 와병생활을 시작하여 막내동생네 집에서 서른도 되지 않은 올케의 병시중을 받으며 지내다가 3년 만에 돌아가셨다.


그 3년 동안 매주 금요일 대전에서 진해로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 심신이 지쳐 힘들어하는 젊은 올케를 위로하고, 어머니를 목욕시키고, 수발을 들다가 월요일이면 얼굴이 해쓱한 올케에게 어머니를 다시 맡기고 대전으로 출근하는 생활이 계속됐다. ‘어머니가 빨리 돌아가셨으면, 아니 빨리 돌아가시지 않아도 좋으니 언제 돌아가실지 알기만 해도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하다가도, 그런 내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 다시 정신을 다잡는 일이 매주 반복되었다.


그러다 그토록 바라던 어머니의 죽음을 맞게 되었다. 전화 연락을 받고 내려가면서 수많은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어머니가 누워계신 방에 들어가서 죄책감과 후회가 통곡이 되어 나오는데, 갑자기 코피가 덩어리째 쏟아지기 시작했다. 문상객들이 놀라 딸까지 죽게 생겼다며, 겨우 말려서 잠시 울기를 멈추면 거짓말처럼 코피도 멈췄다. 몇 번을 반복하다가 문득 ‘어머니의 죽음을 그토록 바란 나 같은 죄인은 울 자격도 없다’ 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뒤에는 밤에 어머니가 나타나 ‘나는 죽기 싫었는데 네가 하도 죽으라고 해서 죽었다’ 며 내 목을 조르는 꿈까지 꾸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노인복지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왜 우리에게는 노인을 위한 제도가 없는가?, 다른 자식들이 나 같은 죄인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노인복지 특히 노년에 질병으로 고통 받는 어르신과 수발로 고생하는 가족들에게 케어 기술을 익혀서 알려주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되었다.


그때 내 사정과 고민을 알고 있던 한 일본인 친구가 일본에 케어복지사라는 자격을 주는 전문대학이 있으니, 자격을 취득해서 원하는 활동을 펼쳐보라는 권유를 해왔다. 그렇게 40대에 일본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연구원 후임 문제로 계획보다 반년 이상 늦어졌지만, 통·번역이 가능할 정도의 일본어 실력과 일본인 친구들의 신분 보장으로 유학생활은 순탄했다.


공부하면서 내가 노인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으며, 다른 사람들 역시 무지해서 늙은 부모를 이해하지 못 하고, 서로 오해하고 힘들어하고 있다는 현실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래서 졸업과 동시에 귀국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대전 시청의 노인담당 공무원에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내서 내가 하고 싶은 일, 특히 부모님의 질병으로 인해 나처럼 자녀들이 죄인이 되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취업신청을 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1996년 5월 사회복지법인 선우복지재단 대전노인요양원의 부설기관인 재가복지센터에서 노인복지로의 첫 발을 내디뎠고, 다음 해 24시간 시설은 단기보호센터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특히 가족들에게 힘들고 괴로운 일이 생기면 한밤중에라도 전화로 위로해주고 힘이 되어주려 노력했다.


노인과 그 가족들의 어려움을 대변하는 활동을 하려면 한국의 노인복지에 대해 더 깊이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야간대학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하여 다시 공부도 시작했다.


이후 우리 법인 산하의 전문요양원, 임마누엘실버홈의 초대원장을 시작으로 대전노인요양원 원장, 선우노인복지센터 센터장으로 활동하다가 2018년 3월에 정년퇴임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토록 꿈꿔왔던 지역 어르신들과 가족들을 돕는 황인옥 치매케어 연구소(사단법인 한국사회적기업연구회 부설)를 개원하게 되었다.


내 목표는 오직 하나, 모든 사람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오랫동안 살아왔던 지역에서 남은 삶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어르신과 그 가족들에게 치매관련 상담은 물론, 교육, 국내외(일본) 연구 협력사업, 정보교류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동네 어르신들과 사무실 앞 평상에 앉아 세상사는 이야기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어르신들이 ‘노인네들한테 돈도 안 받으면서 커피를 주는데 그 돈은 어디서 마련하는지, 사무실 임대료는 나라에서 대 주는지, 돈도 안 되는 이 일을 왜 하는지’ 나를 걱정하며 물으신다.


그러면 나는 ‘몇 십 년 열심히 돈 벌며 살았으니, 이제 지역에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다’ 고, ‘커피값, 사무실 임대료는 걱정하지 마시고 오래오래 사시면서 저랑 이렇게 이야기 나누며 지내자고’ 말씀드린다.


시설장으로 일할 때도 보람이 있었지만 차 한 잔, 따뜻한 인사 한마디에도 고마워하시는 지역 어르신들을 보면서, ‘아, 역시 이 일을 하길 잘했다’ 하는 생각이 든다.


비록 나의 노인복지는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에서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내가 사는 이유이자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홀로 살아갈 수 없다. ‘人’ 사람이 서로 기대 있는 모습을 본떠 만든 이 한자처럼 지역주민들을 위해, 또 지역주민들에게 의지하며 또 다른 노인복지 세상으로의 첫걸음을 힘차게 내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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