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장갑이 아니라 엄지장갑이에요”
2018-02-20 입력 | 기사승인 : 2018-02-20
데스크 bokji@ibokji.com


▶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설리번의 원종건 씨, 전창우 씨, 신재철씨, 김민아 씨 ⓒC영상미디어 


“지금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 즐겁습니다. 처음 우리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그 동기에 대한 순수성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앞으로 이 일을 계속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설리번을 만든 원종건(27) 씨의 이야기다. 설리번은 시각과 청각장애로 원활한 언어 소통이 힘든 중복장애인들이 세상과 마음껏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또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장애에 대한 인식과 편견을 개선하기 위한 운동도 함께 펼치고 있다.


설리번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16년 말쯤이다. 설리번은 당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벙어리장갑’이라는 표현을 ‘엄지장갑’으로 고쳐 부르자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엄지장갑을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세상에 내놓으며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지난해 ‘이어프로젝트’란 이름으로 언어장애인들과 수화통역사를 연결해주는 수화통역 관련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설리번이 언어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깨고 이들의 언어 소통을 돕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종건 씨는 “우리 모두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던 대학생들이었어요.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며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이 무엇일까’란 생각을 많이 했죠. 이런 생각이 ‘커뮤니케이션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란 고민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시각·청각장애인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하자


여기에 원종건 씨의 경험도 크게 작용했다. 원종건 씨는 자신의 어머니가 바로 시각과 청각 장애를 가진 중복장애인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후천적인 이유로 시청각장애를 갖게 됐어요. 이 장애로 말은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을 수 없게 되었어요. 장애인 가족으로서 장애인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불편함과 편견을 제가 간접적으로 경험해왔던 거예요.”


장애를 가진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희망이  2016년 9월 설리번의 첫 프로젝트인 ‘엄지장갑’을 만들어냈다.


원 씨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언어장애 등 커뮤니케이션 장애를 낮잡아 보는 사회적 편견을 바꿔보고 싶었다. 그 생각을 구체화하면서 당시 커뮤니케이션을 함께 전공하던 박힘찬, 김민아 씨 등 세 명의 친구와 의기투합했다. 그렇게 설리번은 2016년 9월 원 씨를 포함해 총 네 명으로 시작됐다. 이들은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벙어리장갑’이라는 표현을 ‘엄지장갑’으로 바꾸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실 ‘벙어리’라는 표현은 언어장애를 가진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다. 이런 표현이 장갑과 결합돼 우리 일상에서 거부감 없이 사용돼왔다. ‘엄지장갑 프로젝트’는 사람들의 이런 인식을 바꾸기 위한 첫 번째 프로젝트였다.


 

▶ 설리번 멤버들이 엄지장갑을 착용한 모습 ⓒC영상미디어


엄지장갑은 편견을 극복하는 언어운동


원 씨와 친구들은 엄지장갑을 만들기 위해 평화시장 등 동대문 지역의 의류, 봉제 제작자들을 찾아다녔다. 찾아다닌 수많은 업체에 설리번이 엄지장갑을 제작하려는 이유와 엄지장갑의 의미를 일일이 설명했다. 하지만 엄지장갑을 제작해줄 장갑 제작업체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발로 뛰며 수소문하던 중 동대문의 한 장갑 제작업체로부터 함께 해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그해 11월 30일 ‘엄지장갑’을 세상에 공개했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제작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엄지장갑이 세상에 등장하자 반응이 대단했다. 엄지장갑을 사고 싶다는 연락이 여러 곳에서 이어졌다. 그뿐이 아니다. 설리번이 처음 기획했던 벙어리장갑이라는 표현을 엄지장갑으로 바꿔 쓰자는 언어운동도 조금씩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원 씨는 “언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라며 “설리번은 물론 우리 주변 사람들이 엄지장갑이라는 표현을 계속 사용한다면 언젠가는 언어장애인 비하 의미가 포함돼 있는 벙어리장갑 대신 엄지장갑이란 말이 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게 될 것”이라고 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이어프로젝트


설리번은 엄지장갑 프로젝트에 이어 지난해부터 두 번째 프로젝트인 ‘이어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어프로젝트란 이름은 영어로 청각을 의미하는 ‘ear’와 우리말 중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는 의미인 ‘이어’에서 따왔다. 이 프로젝트는 청각장애인들이 24시간 불편함 없이 수화통역사를 예약할 수 있게끔 해보자는 목표에서 출발했다.


두 번째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뜻을 같이하는 설리번의 구성원도 늘어 일곱 명이 되었다.


설리번 일원인 김민아(27) 씨는 “어플리케이션 만드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문제는 청각장애인들이 이 어플리케이션을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원종건 씨는 현재 이어프로젝트가 약 60% 정도 진행됐다고 밝혔다. 원 씨는 이어프로젝트와 함께 올해 또 하나의 프로젝트를 시작할 계획이다. 원종건 씨를 비롯한 설리번 구성원들은 이 같은 프로젝트를 통해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과 인식이 조금씩이나마 달라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들은 이런 변화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바탕이 되어주는 것 같아 즐겁다고 했다.


설리번 구성원들은 이 작업들을 하면서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다니고 통과했던 길이 누군가에게는 가고 싶지만 마음대로 가기 힘든 어려운 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우리가 그런 이들 옆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설리번의 목표”라고 했다.

조동진│위클리 공감 기자 
 
<이 글은 ‘위클리 공감’에 게재된 내용으로 공공누리에 의거 공유함>



데스크 bokji@ibokj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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